알리사 밀라노의 뜨거운 테이프 인줄 알았는데..시리아?알리사 밀라노의 뜨거운 테이프 인줄 알았는데..시리아?

Posted at 2013. 9. 10. 15:57 | Posted in 사 회

알리사 밀라노의 뜨거운 테이프 인줄 알았는데..시리아?


유명여배우 섹x 동영상? 발칵? 이런 내용의 영상이 또 유출된줄 알았다.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시리아 내전에 관심을 위해서 만든 영상이었다. 시리아에 세계의 관심이 다시 식고 있는데 그러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저명인사들의 이런 사회적 활동은 언제든 환영이다! 낚시라도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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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도 단기알바하는 청년들...(내 경험이야기)추석에도 단기알바하는 청년들...(내 경험이야기)

Posted at 2013. 9. 10. 14:30 | Posted in 사 회

민족대명절. 남들이 먹고 노는날? 이 날도 일을 하는 알바생들이 있다. 사실 추석에 일하면 시급이 세기 때문에 많이 한다. 나도 추석알바 많이 했었다. 이유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들 쉬고 공부할 시간, 직장인들에게는 가족들을 만나는 꿀맛같은 휴가기간이지만 모두에게 그렇지 않다. 남들이 쉴때 일한다는 박탈감이 들기도 하지만, 연휴가 끝나고 손에 쥔 돈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강남역 술집에서 주방보조 및 서빙 알바를 추석때 5일간 했었다. 시급이 아마 7000원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호프집 해본적도 없는데 가서 주문받고 서빙했다. 옥수수콘 같은거 도와주면서 하루 5시간씩 했으니 나쁘지 않았다. 하루 35000원, 5일에 175,000원을 세금떼지 않고 그대로 받았다. 이 돈중에 절반이상을 여자친구와 1년이라 이벤트하는데 썼다. 약간의 의무감과 여자친구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했었던것 같다. 


죽음의 알바라는 택배상하차는 안해봤다. 동생이 나보다 몸이 훨씬 튼튼한데 여기서 밤 몇번새더니 골골대는걸 보고 생각을 접었다. 허리굽힐새 없이 컨테이너벨트에 올리고, 나르는 작업을 밤새한다고 한다. 정말 다른 알바가 없을때 최후의 알바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신 택배아저씨들과 한차를 타고 배달은 해봤다. 이것도 시급 6만원쯤 했던것 같다. 아저씨는 운전하고 나는 도착하기 전에 연락하고, 차에서 집까지 배달했다. 하루에 25-40개 씩 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이 금방간다. 택배상하차보다 편하고 아저씨랑 이야기하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덜 힘든것 같다.


추석은 아니고 휴일에 편의점 알바도 했었다. 나는 주로 야간근무했는데, 사장님이 주간,야간,주말 가리지 않고 비는날이면 나한테 물어봤다. 안할때도 있었는데 땜방근무는 시급 1.5배 쳐줘서 했던것 같다. 야간 편의점은 혼자해서 지루하고 재미없었는데 주간근무는 같이하는 친구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올해 추석도 일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나도 하루 일한다ㅠ 아무튼 힘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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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대출이 취업에 안좋은 영향? 대출상환 조바심때문에..학자금대출이 취업에 안좋은 영향? 대출상환 조바심때문에..

Posted at 2013. 9. 10. 10:28 | Posted in 사 회




학자금대출 혹시 받아 보셨나요? 처음에는 좀 꺼리칙한데 절차도 어렵지 않고, 받다보면 무감각해집니다. 돈이 있는데 낮은 이율로 학자금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은 허투루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학자금대출이 취업을 하려고하면 발목을 잡습니다. 여유있게 상환기간을 설정해놓았지만 군대, 휴학, 워킹홀리데이 등을 다녀오면 5년은 금방 지나갑니다. 취업을 해야하는 4학년 2학기, 초과학기의 학생들은 이자만 내던지, 원금도 같이 상환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수익이 없는 학생들에게 매달 몇십만원의 상환금을 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취업스터디, 학원 등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부족한데, 중간에 아르바이트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여력이 있어서 상환을 도와주지 않는 이상은 힘듭니다.


이런 심리적 압박감과 여러번 면접에서 떨어지는 등 취업이 힘든것과 맞물리면 불러주는 회사로 취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밖에 수도권소재 학교, 인턴경험 등이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결국 원하지 않는 직장에 취업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이직률도 높아지고 대기업 선호현상이 높아지는 악순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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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추석 보너스는 얼마?당신의 추석 보너스는 얼마?

Posted at 2013. 9. 9. 16:52 | Posted in 사 회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명절이 돌아온다. 늘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보너스는 그래도 바란다. 보너스는 금액이 중요한게 아니고, 회사 사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회사는 3-4년전에는 50만원 떡값이 나왔는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30만원으로 줄었고, 작년 설날부터는 20만원으로 줄었다. 올해는 선물세트만 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많은 수의 중소기업들이 보너스가 줄어들 것 같다.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올 추석때 직장인들이 평균 32만원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기혼은 43만원, 미혼은 26만원이라고 한다.


부산지역의 근무자를 대상으로 보너스를 조사한 결과 평균 44만원이라고 합니다. 서울 지역은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에 20-30만원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주변의 보너스를 보면 대기업만 많이 받고, 중소기업의 경우 현금으로 하나도 안주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당신의 추석 보너스는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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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하지혜 사건, 사모님은 허위진단서로 병원에서 휴식중?이화여대 하지혜 사건, 사모님은 허위진단서로 병원에서 휴식중?

Posted at 2013. 9. 6. 13:24 | Posted in 사 회

스물세살에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학생 하지혜. 왜 이런 사건이 발생하게 됐을까요? 이미 많이 알려진대로(그것이 알고싶다 5월 25일) 사촌오빠, 김현철이 영남제분 사위가 되면서 그냥 허투루 얘기했던 변명을 사모님이 바람피는 것으로 의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에는 공기총 살인사건이라는 말도 안돼는 사건이 발생했구요. 그래서 결국 범인과 사모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지금 멀쩡하게 병원에 있다구요?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사모님과 세브란스병원 주치의 박씨와 허위진단서 거래가 있었던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증거로 1만달러 밖에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현금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추가로 영남제분 회장님을 조사했더니 그 회사도 회계장부가 투명하지 않다고 하네요.


이런 미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고, 추가여부도 밝혀냈으면 좋겠네요. 또 어영부영 권력과 연관되어 종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고라에 나와있는 관련내용 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5049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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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의 주범은 누구인가?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의 주범은 누구인가?

Posted at 2013. 8. 31. 04:15 | Posted in 사 회

우연히 알게된 독일의 역사 관련 이야기, 역사 관련 미스테리는 늘 흥미롭다. 오래된 과거는 기록으로만 남겨져 있고 명확한 증거를 찾을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1930년대 독일은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1914년 - 1918년)의 패전국이된 이후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후 경제는 안정화되고 있었지만 1929년 세계대공황이 터지면서 독일에도 실업자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산당과 나치당은 인기를 얻을수 있었다. 수많은 실업자들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특별히 다른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당이 집권할 때 경제가 안좋으면 야당에게 민심이 쏠리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193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러나 나치당은 7월 선거에서 37%의 득표를 얻어 230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히틀러는 계속해서 공산당을 내치기 위한 기회만 보고 있었던것 같다.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에 화재가 일어난다. 




현장에 있던 마리뉘스 판 데르 루페는 현행범으로 체포가 된다. 그는 벽돌공으로 일하던 사람으로 당시에 실업자였다. 이어서 아돌프 히틀러와 국회의장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 등 나치 사람들이 도착했다. 이후 수순은 공산주의자 소행이라고 소리친 괴링에 의해 공산당의 지도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기다렸다는 듯이 독일내의 공산당원 지도자들을 잡아들였다. 히틀러가 이렇게 공산당을 탄압하는 것은 전권위임법 가결을 위해서였다.


전권위임법은 비상사태에서 수상에게 의외 동의 없이 법률을 의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즉 당시 수상이었던 히틀러의 권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법이었다. 의회 2/3 찬성이 필요했지만 나치의 의석은 당시 32%에 불과했다. 국회의사당 화재를 계기로 히틀러는 공산당을 몰아내야 하고, 나치에게 힘을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1933년 3월 5일 총선거가 이뤄졌다. 


나치당은 44%의 득표률을 거두었지만 기대에는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당시 나치당의 우호정당인 독일 국가인민당의 8%를 합쳐서 52%로 다수당이 되었다. 나치당은 이후에 정당들을 협박 회유했고, 이후 다른 정당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하늘이 히틀러에게 준 기회였을까?


사건의 범인으로 잡힙 루페는 결국 방화를 했다고 자백했다. 그리고 1934년 1월 사형이 당했다. 많은 의문점들이 있었다.당시 현장의 소방대에서 발화점을 60-65개로 보았다. 이는 인화재를 사용한 것인데  그 큰 국회의사당을 루페가 혼자 다 태우기에는 힘들었다. 또한 당시에 방화범에게는 사형을 주지 않았는데 아무런 조사없이 사형을 당했다. 여러가지 의심되는 사항이 있었다.


이후 3월에 라르라는 자가 강도 혐의로 붙잡힌다. 이자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카를 에른스트가 지휘하는 10명의 대원이 방화를 주도했다는 주장이었다. 중간에 이 주장은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고, 며칠후 라르는 죽음으로 발견된다.


마리뉘스 판 데르 루페는 왜 죄를 다 뒤짚어 쓰고 죽었을까? 그리고 히틀러는 어떤 관계 였을까? 이 모든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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