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의 주범은 누구인가?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의 주범은 누구인가?

Posted at 2013. 8. 31. 04:15 | Posted in 사 회

우연히 알게된 독일의 역사 관련 이야기, 역사 관련 미스테리는 늘 흥미롭다. 오래된 과거는 기록으로만 남겨져 있고 명확한 증거를 찾을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1930년대 독일은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1914년 - 1918년)의 패전국이된 이후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후 경제는 안정화되고 있었지만 1929년 세계대공황이 터지면서 독일에도 실업자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산당과 나치당은 인기를 얻을수 있었다. 수많은 실업자들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특별히 다른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당이 집권할 때 경제가 안좋으면 야당에게 민심이 쏠리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193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러나 나치당은 7월 선거에서 37%의 득표를 얻어 230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히틀러는 계속해서 공산당을 내치기 위한 기회만 보고 있었던것 같다.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에 화재가 일어난다. 




현장에 있던 마리뉘스 판 데르 루페는 현행범으로 체포가 된다. 그는 벽돌공으로 일하던 사람으로 당시에 실업자였다. 이어서 아돌프 히틀러와 국회의장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 등 나치 사람들이 도착했다. 이후 수순은 공산주의자 소행이라고 소리친 괴링에 의해 공산당의 지도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기다렸다는 듯이 독일내의 공산당원 지도자들을 잡아들였다. 히틀러가 이렇게 공산당을 탄압하는 것은 전권위임법 가결을 위해서였다.


전권위임법은 비상사태에서 수상에게 의외 동의 없이 법률을 의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즉 당시 수상이었던 히틀러의 권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법이었다. 의회 2/3 찬성이 필요했지만 나치의 의석은 당시 32%에 불과했다. 국회의사당 화재를 계기로 히틀러는 공산당을 몰아내야 하고, 나치에게 힘을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1933년 3월 5일 총선거가 이뤄졌다. 


나치당은 44%의 득표률을 거두었지만 기대에는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당시 나치당의 우호정당인 독일 국가인민당의 8%를 합쳐서 52%로 다수당이 되었다. 나치당은 이후에 정당들을 협박 회유했고, 이후 다른 정당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하늘이 히틀러에게 준 기회였을까?


사건의 범인으로 잡힙 루페는 결국 방화를 했다고 자백했다. 그리고 1934년 1월 사형이 당했다. 많은 의문점들이 있었다.당시 현장의 소방대에서 발화점을 60-65개로 보았다. 이는 인화재를 사용한 것인데  그 큰 국회의사당을 루페가 혼자 다 태우기에는 힘들었다. 또한 당시에 방화범에게는 사형을 주지 않았는데 아무런 조사없이 사형을 당했다. 여러가지 의심되는 사항이 있었다.


이후 3월에 라르라는 자가 강도 혐의로 붙잡힌다. 이자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카를 에른스트가 지휘하는 10명의 대원이 방화를 주도했다는 주장이었다. 중간에 이 주장은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고, 며칠후 라르는 죽음으로 발견된다.


마리뉘스 판 데르 루페는 왜 죄를 다 뒤짚어 쓰고 죽었을까? 그리고 히틀러는 어떤 관계 였을까? 이 모든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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